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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연대책임: 한국적 집단주의

  • 등록일 : 2024-04-23
  • 조회수 : 29
  • 작성자 : 대학신문사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4년 4월 24일(수)]


연대책임: 한국적 집단주의


이건우 기자

(Virtuoso@jj.ac.kr)

 

 필자는 ‘한국성’과 거리가 대단히 먼 시민이다. 제1언어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다. 사고의 문자화가 필요한 경우 영어를 사용한다. 대인 관계망 속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은 약 1:6이다.

이런 필자에게 ‘한국적 집단주의’는 언제 조우해도 생소하다. 생소한 것은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오랜 관찰의 일환으로, 본 칼럼에서는 두 가지 대조적 사례를 통해 한국적 집단주의의 작동 원리를 분석하고자 한다.


Yangju Highway Incident(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경,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에서 부교 운반용 장갑차가 앞서 갓길로 보행 중이던 신효순(14), 심미선(14)을 깔고 지나가 두 명 모두 즉사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미 군사 법정은 당시 장갑차 운전자 마크 워커(Mark Walker) 와 페르난도 니노(Fernando Nino)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는 한국 국민들의 즉각적인 범국민적 반미 투쟁을 촉발했다. 약 10만 명의 인파가 광화문에서 반미 촛불 집회를 이어갔고,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를 비롯한 미국 고관들의 사과와 유감 표명 및 다양한 배상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 시기에 형성된 반미 감정은 이후,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Virginia Tech shooting(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4월 16일이라는 날짜에 2014년의 기억만을 가졌을 보편적 20대와는 달리 필자에게는 그로부터 7년 전, 2007년의 기억이 함께 있다. 2007년 4월 16일 오전 7시 15분경부터 9시 51분경까지, 버지니아 공과 대학(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 재학생인 재미 교포 조승희(Seung-Hui Cho)가 반자동 권총 두 정으로 난사해 32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한국 및 미국 내 한인 공동체에서 집단적 책임론이 대두되어 촛불 예배나 집회 등이 이어졌으나, 처음부터 인종주의를 철저히 배제하고 조승희 개인의 일탈, 총기 관리의 실패, 대학생 및 시민 전반의 정신 건강 복지 체계 미흡 등으로 원인을 규정한 미국 사회는 전술한 한국인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언론은 이를 ‘집단적 비애 및 참회의 감각(The collective sense of sorrow and penitence)’이라고 진단했다.


 두 사례에서 필자가 포착한 ‘한국적 집단주의’는 혈연주의에 기반한 속인주의의 확장이며, 카뮈와 사르트르가 제시한 서로 다른 내집단 구성 원리 중 카뮈의 ‘소통과 협력’보다 사르트르의 ‘폭력’이 주로 기능하는 형태다.

 상기의 ‘한국적 집단주의’에 기반한 대표적 현상으로 필자는 ‘연대책임’을 상정하고자 한다. 필자가 정의하는 ‘연대책임’이란 확장적 마을 공동체 정신의 실행으로, 개인 실책에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관리 감독의 책임을 분담하는 형태다. “어린이 한 명의 육성을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격언의 극단적 실천 사례다.

 ‘연대책임’의 실제 작동 원리는 상기 두 사례의 심층 분석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 사례의 경우는 ‘연대책임’을 외집단인 미국에 제시한 예고,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사례는 ‘연대책임’을 광의의 한국인인 재미 교포에까지 확장하여 내집단인 한국에 적용한 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사례에서 미국 사회는 한국의 ‘연대책임’과 그 배경의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탓에 한국 사회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한국의 ‘연대책임’ 집단주의는 그 성격이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지만, 외집단이 내집단을 공격한다는 인식 하에 결속을 재확인하는 장치로 사용될 때는 공격적으로 변모함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 사례에서 관측할 수 있다. 일례로, 장기 체류 혹은 귀화 외국인은 타국과 한국 간의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이 소속된 한국인 공동체에게 “독도는 어느 나라 땅이냐?” 등의 질문으로 그 ‘한국성’을 시험받는다. ‘연대책임’이 공격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중립성과 모호성을 버리고 진짜 한국인이 되어 인정받으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적으로 인식되고, 공동체로부터 도태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세계시민의 정신을 부정하고 분열과 반목을 초래할 뿐임을 적어도 외국인 유학생들과 동문수학하는 우리 대학 학생이라면 인지할 필요가 있다. 미세먼지와 황사 문제에 있어 중국의 공장이나 사막이 핵심 원인이라면, 단순 ‘중국 대상 분풀이’나 ‘지도자 험담’은 문제 해결에 있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결정을 일본 국민 개인의 책임으로 치환하여 그들 개인에게 사과의 책무를 부여할 수도 없다. 연대의 대상인 동료 세계시민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지성인의 책임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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