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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배우는 이유
[전주대신문 제934호 13면, 업로드일: 2023년 10월 25일(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배우는 이유 하영우 교수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님, 대학에 와서까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꼭 공부해야만 하나요? 어문 규범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6년 전 A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던 중 한 학생이 했던 질문이었다. 여러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했지만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사실 모두가 궁금해 했지만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물음이기도 했다. 아마도 A대학이 학생 모두가 공대생인 특수한 곳이었기에 가능했던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 아니었나 싶다. 평이하지만 흥미로웠던 질문에 꼭 맞는 답을 해 주고 싶었다. 질문이 두 개였으므로 답도 둘이었다. 첫 번째 질문인 ‘대학생인데, 꼭 어문 규범을 공부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은 “물론입니다.”였다. A대학은 글쓰기 강의가 교양 필수였지만, 글쓰기 능력 관련 시험을 잘 보면 수업 면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은 글쓰기 능력이 A대학에서 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뜻이다. 대학에 와서까지 맞춤법을 배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물론 질문한 학생은 대학생이므로 자신의 전공 영역에 있어 일정 수준의 전문 소양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공에만 한정된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모든 영역의 수준을 동급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과거의 영광이 오늘의 나를 담보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르면 배워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인 ‘어문 규범은 왜 중요한가요?’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사회적 규정이니까요’라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은, 답 같지 않은 정답은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어문 규정은 언제 중요할까요?”로 바꿨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황 설정’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친구와 대화를 할 때 어문 규범에 맞지 않는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맞춤법과 띄어쓰기 오류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상황을 바꾸어서, 회사나 기관 등에서 작성되는 중요 문서에서 누가 봐도 틀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발견되었다면 어떨까? 아마 문서 작성자는 그날 하루를 평온히 보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문서였다면 직장 생활 자체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굳이 대학에 와서까지 어문 규범을 배우는 이유다. 질문을 했던 학생은 다음 해에 A대학 바로 옆에 위치한 정부 출연 연구 기관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소식을 전해 준 학생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앞으로 공문서 쓸 일이 많겠다는 말도 전했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으니 잘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덧붙여,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글의 첫 줄에 있는 질문을 품고 있는 이가 있다면 또한 답이 되었기를 바란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2023-10-24
272
[독자투고] 「문명 5」 의 기념비와 우울
[전주대신문 제934호 13면, 업로드일: 2023년 10월 25일(수)] 「문명 5」의 기념비와 우울 건축 노동자들은 황금으로 빛나는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되던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들이 넘치는데, 누가 그것을 세웠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질문」(1935) 中 「시드마이어의 문명」이라는 PC 게임 시리즈가 있습니다.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의 턴 방식 게임인데, 다섯 번째 편인 「문명 5」는 판매 부수가 천만 장 이상 되는 등의 인기를 구가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저 또한 이를 즐기다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사학과에까지 진학해 버린 경우라 특별히 애정을 두는 게임입니다. 「문명 5」를 시작하고 처음에 주어진 개척자 유닛으로 도시를 건설하면 ‘기념비’라는 건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타 건물을 만들려면 기술을 연구해야 하는데 기념비는 이를 필요로 하지 않아 곧바로 만들 수 있지요. 게다가 ‘문화’ 점수를 주기에 이를 요구하는 ‘사회 정책’을 빠르게 채택하려면 반드시 지어주어야 하는 건물입니다. 유지비는 적게 들면서도 건설한 도시는 국경 확장 속도가 늘어납니다. ‘꿀건물’이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은 것이 바로 기념비이지요. 그렇다면 현실로 복귀해 질문을 던져봅시다. 기념비란 무엇입니까? 현실의 기념비는 마냥 ‘꿀건물’이라고만 하기에는 암울한 구조물입니다. 가령 이탈리아 로마에는 티투스 개선문이 있습니다. 유대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황제 티투스(Titus)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허나 티투스는 유대의 학살자였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약탈자였지요. 이 전쟁에서 몇십만의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통곡의 벽 또한 이때 형성된 것입니다. 헤로데 성전이 파괴되며 남은 마지막 외벽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지요. 그에 비해 티투스 개선문은 은피리, 메노라(유대교 전통 의식에 쓰이는 여러 갈래의 촛대), 온갖 금은보화와 약탈물을 나르는 로마 군대의 개선 행렬을 대리석 부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기념비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풍당당 행군하는 정복자와 배후의 약탈당한 희생자. 기념비란 ‘역사의 승자’를 기념하고 칭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전제적 정복군주의 권위와 지배를 재생산하는 구조물이지요. ‘조아려라, 너희는 반항할 수 없다! 꿇어라, 나에게 복종하라!’ 이는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의 비문이나 베를린 전승기념탑에서도 변주되는 모티프입니다. 이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역사철학테제』의 일곱째 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리품들은 늘 그래왔듯이 개선 행렬에 따라다닌다. 사람들은 그 전리품을 문화재라고 칭한다. 그 문화재들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유물론자가 문화재들에게서 개관하는 것은 하나같이 그가 전율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만들어낸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에뿐만 아니라 그 천재들과 함께 살았던 무명의 동시대인들의 노역에도 힘입고 있다. 동시에 야만의 기록 아닌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길(도서출판), 2008, 336쪽) 그렇습니다. 기념비는 전승탑입니다. 전쟁으로 이룩한 승리를 예찬한다는 티투스적 의미에서, 노역을 무명화(無名化)하고 민중을 패퇴시키는 과두(寡頭) 승리의 의미에서도 전승탑인 것입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문명 5」의 기념비가 ‘문화’ 점수를 주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명예’ 사회 정책을 채택하고 ‘야만인’을 죽여도 문화 점수를 주지요. 전도(顚倒)된 야만인 것입니다. 게다가 도시를 펴고, 다시 말해 정착 생활을 한 이후에 만들 수 있는 최초의 건물은 기념비이지 않습니까? 이는 다음처럼도 말해질 수 있습니다. ‘문명’이란 거대한 전승탑이라는 끔찍한 진실, 인간사(人間史)는 피칠갑된 마차 행렬의 바퀴를 굴리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사피엔스」 식 염세로 말입니다. 결국 「문명 5」는 억압당한 자들의 지난한 신음에 관한 알레고리인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답을 찾아내어야 하지요. 다시 선생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따라서 역사적 유물론자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러한 전승에서 비켜선다. 그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본다.” (같은 책, 336쪽) 진보사관의 파국적 조류를 거부하고 역사의 결을 거슬러 소외된 이들과 조우하는 것. 지금을 적어내는 와중의 아침날에도 하늘의 별이 된 이가 있다 합니다. 부당한 근로계약과 임금체불에 스러져 자신을 불사른 택시 기사님이 유명을 달리하셨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문사학도에게 부과된 과제란 바로 이러한 고통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눈물을 닦아드려야 하겠습니다. 독자투고: 역사문화콘텐츠학과 전경석(18)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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