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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사도세자는 왜 뒤주에 갇혔을까?

  • 등록일 : 2024-05-21
  • 조회수 : 64
  • 작성자 : 대학신문사

[전주대신문 제939호 9면, 업로드일: 2024년 5월 22일(수)]


사도세자는 왜 뒤주에 갇혔을까?


전지은 기자

(uptoillie20@jj.ac.kr)



 인터넷을 떠돌다가 ‘한글을 사랑하자’라는 취지로 작성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에서 소셜 미디어는 누리 소통 매체로, 브이로그(Vlog)는 영상일기로 외래어를 우리말로 고쳐 썼다. 개중에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영조의 사도세자로 바뀌었다. 물론 ‘슈뢰딩거’는 고유명사이기에 글의 취지와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를 알기에 이러한 농담을 이해할 수 있다. 약 500년 역사의 조선사 중에서도 엽기적인 내용으로 알려진 사도세자의 비극. 그러나 그 전말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도세자는 왜, 어떻게 왕세자의 신분으로 하필이면 뒤주에 갇혀야만 했을까?

 영조 4년,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가 10세의 어린 나이에 죽고 41세의 나이에 아들을 얻으니, 그가 훗날 사도세자가 되는 이훤이다. 중종실록에서 ‘세자의 나이가 반드시 여덟 살이 되어야 책봉했던 것은 시선, 문안, 입학의 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라는 기록을 보면 여덟 살 무렵 책봉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른 나이에 세자가 된 이훤은 세 살부터 교육을 받았다. 두 살에 천자문을 배워 60자를 써내고 비단과 무명을 구분하며 사치와 검소의 차이를 판별하는 등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도세자는 공부에 흥미를 잃고 그림, 무예, 도교 등에 빠졌고 이에 실망한 영조는 사도세자의 행동에 과하게 간섭한다. 혜경궁 홍씨가 작성한 한중록에서 ‘심지어 백성이 춥고 배고프거나 가뭄이 들거나 천재지변이 있어도 꾸중하셨다. 세자의 덕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세자께서는 날이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이 치면 또 무슨 꾸중이 나실까 근심하시고 염려하여 일마다 두렵고 겁을 내셨다’라는 문장으로 보아 그 정도를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일화로는 영조 32년,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가 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랫동안 사도세자에게 걸음 하지 않았던 영조가 돌연 사도세자를 보러 낙선당으로 행차했다. 당시 사도세자는 울화병과 의대증(衣帶症)이라는 옷을 못 입는 강박증이 있을 정도로 심신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이유로 얼굴도 씻지 않고 옷차림 또한 단정치 않았는데, 영조는이를 보고 사도세자가 술을 먹었다고 단정해 책망했다. 보모 최 상궁이 “술을 드셨다는 말씀이 원통하니 술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십시오”라고 했으나 영조는 이를 듣지 않았다. 그날 낙선당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영조는 이 또한 사도세자가 저질렀다고 생각해 나무랐다. 술을 즐겨 하지않던 사도세자는 그날로 과음하기 시작했다. 이는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졌다. 보다 못한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 씨가 영조를 찾아가 사도세자를 죽여달라 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칼을 휘두르며 자결할 것을 명했다. 사약을 내려 사도세자가 죽는다면 사도세자가 죄인이라는 뜻이 되고, 이는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왕세손인 정조 또한 죄인의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도세자가 자결하려고 했으나 신하들이 칼을 빼앗고 날아오는 돌을 막아서서 그의 죽음을 막는다. 사도세자의 자결을 방관하면 왕실에 대한 불충이 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영조가 뒤주를 가져오라 명해 사도세자를 가뒀고 8일 만에 굶겨 죽였다. 그렇게 사도세자는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크기의 상자인 뒤주에 갇혀 명을 달리한 것이다.

 임오화변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 부자 갈등, 생모의 부재, 노론과 소론의 대결 구도 등 한 가지 원인을 꼽기 어려운 다양한 역사학적 관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 이유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사건을 단편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고, 두 번째 이유는 정조가 남긴 기록과 혜경궁 홍씨가남긴 기록이 자신들의 입장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서술되어 객관적 설명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 나이에 왕세자가 되어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 스트레스로 탈선해 아버지의 눈 밖에 나게된 하나의 사건만을 정리한 해당 본문만을 보고는 임오화변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는 비단 과거의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때로는 제한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판단을 내릴 때에도 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우선 신뢰할 수 있는글인지 확인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접해봐야 한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서 안다고 생각하고 어물쩍 넘어간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한 또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보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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