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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들의 평화

  • 등록일 : 2023-10-24
  • 조회수 : 141
  • 작성자 : 대학신문사

[전주대신문 제934호 11면, 업로드일: 2023년 10월 25일(수)


세상들의 평화



한병수 목사

(선교신학대학원장·선교신학대학원 신학과 교수)

  

 세상에는 많은 세상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한 세상에서 산다. 각자가 가진 기준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도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같은 지구를 디디며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시간에 머물지만 생각이 다르면 모든 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의 지구촌 안에서도 그 수많은 세상의 조화와 공존과 상생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각자가 타인의 세상을 짓밟으며 자신의 세상을 한없이 넓히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의 영역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과 관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상을 확대한다. 여기에는 옳고그름 문제가 발생한다. 그 맥락에서 자신은 옳고 타인은 틀렸다는 이분법이 곳곳에서 활개친다. 입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 상대방의 입장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한다. 때로는 흉기를 사용하고, 때로는 속임수를 사용하고, 때로는 편 만들기와 줄 세우기에 돌입하여 쪽수로 승부한다.

 자신의 기준과 관점에 대한 집착들의 충돌 때문에 사람들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공통의 규범 즉 법을 만들었다. 법은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자유와 개별적인 세상의 적정한 확장을 허용하는 합의된 규정이다. 동시에 법의 존재는 개인과 개인의 갈등을 당사자가 스스로는 해소하지 못한다는 일종의 반증이다. 물론 법은 문명의 발전을 보여주는 첨병이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은 인간을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고발한다. 법만이 아니라 법원의 존재도 유사한 것을 고발한다. 인간은 합의된 법이 있더라도 존중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의 법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의 기준과 관점을 따라 사회법을 해석한다. 이런 주관적인 해석들은 충돌한다. 그러면 그 해석들은 재판정에 선다. 재판관은 무엇이 옳은 해석인지 결정한다. 재판관의 존재는 법의 해석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전제를 드러낸다.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결이 내려진 사안에 대해서도 불복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그때 판결을 집행하는 경찰의 공적인 무력이 동원된다. 경찰의 존재도 사회법에 근거한 법원의 최종적인 판결조차 거부하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등을 드러낸다. 

 법의 존재만이 아니라 집에 울타리가 있다는 것, 그것이 불안해서 문이 있다는 것, 문으로는 불안해서 자물쇠가 있다는 것, 그것으로 안심이 되지 않아서 CCTV가 있다는 것도 보안의 발달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타인의 소유를 탐하고 훔치는 인간의 도둑놈 심보를 고발하고 있다. 거래할 때 구두로 계약하는 것이 부족하여 계약서를 쓰고 그것도 부족하여 도장이나 자필 서명을 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공증인이 필요한 것도 거래 문화의 발달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인간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존재라는 사실도 드러낸다. 사람의 지식이 가시광선과 가청주파수의 세계를 넘어 극미시 세계와 극거시 세계를 출입할 정도로 과학과 기술은 발달했다. 그러나 그것이 신기하고 놀랍지만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것보다 해를 끼치는 부작용이 크다. 식품만 보더라도 유전자를 조작한 것보다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더 선호한다. 인위적인 조작보다 있는 그대로가 더 우수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의 유구한 손때가 묻은 문명의 발달이 주는 유익은 대단하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의 발달을 예찬하는 동시에 발달의 배후에는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기준과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삶의 형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정상일까? 기독교는 그런 현실을 비정상과 무질서로 이해한다. 각자가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그래서 공동체에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의 배후에는 인간의 본성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석한다.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사람을 왕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은 그런 왕이고자 한다. 자아를 찾아가고,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를 개발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기호의 끝에 왕이고자 하는 기대감이 있다. 자신이 왕이 된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을 확장한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싸워야 함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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