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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가장 천천히 달리는 연습, 『천 개의 파랑』

  • 등록일 : 2023-11-20
  • 조회수 : 111
  • 작성자 : 대학신문사

[전주대신문 제935호 8면, 업로드일: 2023년 11월 22일(수)]  


가장 천천히 달리는 연습, 『천 개의 파랑』



저자: 천선란

쪽수: 376쪽

출판사: 허블

국내 출간일: 2020. 8.19.

장르: SF

 

투데이는 죽어야 한다. 왜? 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관절이 망가져 아프기 때문이다. 왜? 너무 빨리 달렸기 때문이다. 왜? 인간이 원했다. 왜? 빠른 말만이 인간에게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왜? ⋯. 투데이를 치료할 수는 없는가? 현재 인간의 의료기술로는 닳기 이전의 완벽한 관절로 되돌릴 수 없다. 또 다른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프기 전으로.


‘천 개의 파랑’은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 ‘투데이’와 인간의 실수로 탄생해 보통의 휴머노이드와 다르게 사고하는 ‘콜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 모녀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배경은 근미래며, 경마 경기의 기수가 더는 인간이 아닌 세상이다. 사람이 기수라면 말이 최고 속도를 내지 못 내게 하는 방해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기기는 인간보다 작고 가벼우며, 떨어진다 한들 생명과 연관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는 연구생이 칩을 떨어트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닥에 떨어진 칩을 청소 담당자가 다른 칩 상자에 넣었다는 것이다. 둘 다 인간이 아닌 기계였다면 절대로 일으키지 않았을 사고였다. 그러니 콜리는 인간의 실수로 탄생한 셈이다.


세 모녀는 아버지이자 남편을 잃고 오랫동안 대화에 단절이 있었다. 로봇이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협화음이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이가 벌어진 것이다. 척추성 소아마비로 다리를 잃은 첫째 은혜, 그런 은혜에게 밀려 늘 뒷전이 된 둘째 연재, 두 명의 자매와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겨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혼자 음식점을 영업하며 두 아이를 겨우 키워나가는 엄마 보경이가 이 소설에 주로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연재는 기계를 다루는 일에 재능이 있었지만, 소프트 로봇 연구 프로젝트의 면접에서 ‘왜 이 일을 하고 싶고 그래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순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어 답을 하지 못한다. 이후 계속 방황하던 어느 날 경마에서 낙마해 망가진 투데이의 로봇 기수, 콜리를 만난다. 콜리는 여타 다른 로봇과 달랐다. 하늘이 예뻐 바라보고 싶다는 이유로 말에서 떨어진 녀석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 연재는 매료되어 거금을 들여 구매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로봇을 고치는 과정에서 자신이 왜 로봇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떠올리게 된다. 


보경은 바쁜 일상에 치이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가족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다가 콜리와의 대화로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보경과 콜리는 가까워지고, 어느 날 보경이 먼저 떠나보낸 남편을 그리워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콜리는 더 뛰지 못해 어린 나이에도 죽음이라는 예정된 끝을 가진 투데이를 행복하게 할 방법을 학습한다. 그들은 ‘가장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통해 투데이에게 마지막 경기를 선물하고자 한다. 


전지은 기자(uptoillie20@jj.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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