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연구단] 일제강점기 친일 유림 단체 대동사문회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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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04-18 조회수 402 작성자 한국고전학연구소 |
첨부 : 20240329.논문.일제강점기 친일 유림 단체 대동사문회 연구.pd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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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070751 |
국문초록 3⋅1운동에 놀란 일제는 한국의 통치 기조를 바꾸기 시작한다. ‘문화통치’라는 미명 아래 조선의 문화 활동을 다양하게 보장했다. 특히 단체 설립과 신문⋅잡지 발행도 활발해졌다. 일제는 조선을 통치하는 방법 중 하나로 유림을 친일파로 만드는 작업에 힘을 쏟았다. 조선을 병합하자마자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변경했다. 또한 유림 단체의 설립 기준을 완화하여 경성과 지방에서 다양한 유림 단체가 결성되었다. 본고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친일 유림 단체인 대동사문회를 연구하되, 이 단체의 결성과 참여 인원,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동사문회는 문화통치 시기 가장 먼저 결성된 유림 단체이다. 1920년 1월에 설립되어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대략 5년여 정도 되지만,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친일 유림 단체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하다. 일제에 부역한 조선인들이 많지만, 특히 가장 고위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유림 세력의 활동은 대동학회(이후 공자교회), 문예 동호회인 以文會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친일 유림의 계보와 활동을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대동사문회에서 초기에 역점을 둔 사업은 현철을 숭상하고 사당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향교재산 환부, 경학을 중심으로 하는 문과대학인 大成學院을 설립, 孔夫子 忌辰 40周甲 追慕式 거행 등이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유도진흥회, 조선유교회, 유교부식회 등의 유림 단체의 전모를 조망하는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